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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킬리만자로의 표범, 나 홀로 뒷조사.

[현대수필 2007년 가을호]


킬리만자로의 표범, 나 홀로 뒷조사.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 되고 싶다.


가수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도입부 내레이션이다. 굳이 하이에나와 대조되거나 산정 높이서 굶어죽지 않았더라도 표범은 충분히 신비롭고 매력적인 존재다. 표범은 다른 고양이과 동물들과 마찬가지로(사자를 제외하고) 짝짓기 때와 새끼를 낳아 키우는 시기를 제외하곤 대부분 혼자서 살아간다. 게다가 낮에는 숲 속이나 나무 그늘에 숨어서 쉬고 밤이 되어서야 활동을 하기에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면이 더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탄자니아의 자원관광부 대사가 조용필에게 훈장을 수여했을 만큼, 이 노래 속 주인공은 발표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해 오고 있다. 표범같은 삶을 살고 싶었거늘 현실이 도와주질 않는다며 소주잔을 기울이게 하는가 하면, 기어이 그 표범을 보고야 말겠노라며 킬리만자로 등반을 준비하게도 만든다.


알다시피 이 노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영감을 얻은 듯 하다.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킬리만자로는 해발 5,895미터의 눈 덮인 산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한다. -중략- 그런데 그 서쪽 봉우리 근처에는 말라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 하나가 나둥그러져 있다. 그 표범이 그 높은 곳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헤밍웨이의 표범은 정체가 무엇일까? 직접 본 것일까? 지역 설화일까? 아니면 메타포일 뿐일까? 표범이 정말 그 곳에 살까? 이 못 말릴 호기심! 과학책부터 뒤져본다.


표범은 적응력이 무척 뛰어난 동물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 곳곳의 사바나와 초원은 물론 빽빽한 밀림과 반사막 지역에서도 발견되니 말이다. 실제, 킬리만자로를 떠받치고 있는 탄자니아와 케냐 지역에도 표범이 살고 있다.


그러나 표범이 킬리만자로의 만년설 부근까지 올라가는 일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바로, 고산병 때문이다. 헤밍웨이도 종주했다고 전해지는 이 산은 전문 산악인이 아니어도 등반이 가능하긴 하지만, 보통 고도 3,000미터 지점부터 고산병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사전준비가 없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중도하차 하기 마련이라 한다. 고산병은 기압이 떨어져 체내 혈중 산소량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드는 탓에 생기는데, 두개골과 뇌가 따로 노는 듯한 두통, 놀라운 노동량에도 굴하지 않고 나타나는 불굴의 식욕부진, 덕분에 먹은 것도 없건만 계속되는 서러운 구토, 길 한 복판에서 퍼질러 눕게 만드는 무기력증이 대표적이다.


표범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도 고산병 증상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안데스 산맥의 고지대(4,200-4,800미터)의 알파카나 과나코처럼 아예 그 곳에서 나고 자란 동물들은(그 지역 원주민들도 마찬가지) 예외지만 말이다. 덕분에 킬리만자로 정상에는 몇몇 지의류를 제외하곤 동식물이 살 수 없다. 올라가는 것도 힘들지만, 올라가 봐야 반겨주는 이도 없고 먹을 것도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헤밍웨이의 표범은 허구일 뿐인가? 그렇다면,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동경해 오던 수많은 이들이 배신감을 느끼진 않을까? 계속되는 나홀로 뒷조사. 이번엔 해외 자료 공략.


째깍째깍....... 아싸, 가오리!


그 표범의 이야기는 실화였다. 무려 80여 년 전의 일이다. 그 지역 루터교 선교사였던 리처드 로쉬라는 사람은 이미 수 십 번째 킬리만자로를 오른 베테랑이었다. 1926년 9월, 40번째 등반길이던 그는 킬리만자로 정상 분화구 가장자리 바로 아래 5,638미터 지점에서 표범의 사체를 발견했다. 그는 기념사진을 찍은 뒤(실제 해외의 한 사이트에서 아주 작은 사진을 볼 수 있었는데, 그야말로 기묘한 자세로 꽁꽁 얼어붙어 있는 모습이다) 전리품으로 한쪽 귀를 잘라 가져갔다. 그 장소는 표범 포인트(leopard point)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표범의 사체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몇 해 뒤 ‘킬리만자로의 눈’이 탄생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기쁘게도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실제 존재했다. 그러나 왜 그 표범이 갖가지 고산병 증세를 견뎌가며 정상을 향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있다.


적도 부근에 위치하면서도 1만년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꼭대기의 만년설 덕분에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 하얀 산’ 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킬리만자로. 이젠 그 이름이 무색하게 됐다. 지구온난화 덕분에 만년설이 거의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제 더 이상 표범은 눈 덮인 산정에서 얼어 죽지 못하게 됐다.


TIP

그래도 굳이 눈으로 뒤덮인 고산에서 표범을 만나고야 말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면 히말라야의 눈표범(snow leopard)을 추천한다. 대형고양이과 동물인 눈표범은 표범에 비해 덩치는 작지만 카리스마는 못지않다. 이들은 고도 3,000-4,000미터 사이의 초원이나 암석지대에서 여름을 보내고 겨울에는 먹이를 찾아 1,800-2,000미터의 삼림지대까지 내려온다. 흰 바탕에 표범처럼 얼룩무늬가 있는데, 이들의 매혹적인 털을 탐내는 도시문명인들 덕분에 원주민들의 밀렵이 끊이질 않아 멸종위기에 처했다. 몇 년 후면 ‘추억의 히말라야의 눈표범’이란 노래가 등장할 지도.


글 : 김소희 (수필가, 동물칼럼니스트)

애니멀파크(www.animalpark.or.kr)

[현대수필 2007년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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